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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꾼에게 깃든 술에 대한 갈망처럼, 혹은 연인에게 깃든 사랑처럼
- URL: https://www.yourstandpoint.com/matisse_grandpalais/
- Published: 2026-07-15T17:56:12.000Z
- Updated: 2026-08-03T21:53:48.000Z
- Description: 마티스 할아버지의 팔레트에 담긴 비밀
- Author: Jungeun Yoo
- Tags: 문화 얘기

잠시 파리에 놀러 온 친구가 혼자 마티스 전시를 보고 돌아온 다음, 저에게 남긴 단호한 여섯 글자.

**마 티 스 질 투 나.**

보통 전시를 보고 나오면 “색감 진짜 좋더라”, “사람 너무 많던데”, “굿즈 이거 사 왔어, 봐봐.” 정도 이야기하지 않나요. 그런데 대뜸 화가에게 질투가 난다니. 대체 뭘 보고 온 거니. 우린 직업이 예술가도 아니잖아(친구는 공무원). 마침 파리를 강타한 이글이글 무더위를 피해 저도 미술관으로 뛰어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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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nd palais 그랑 팔레

샹젤리제 거리 끝자락의 커다란 전시관, 'Grand Palais'에서 진행 중인 이 전시에는 프랑스 대표 화가 앙리 마티스의 말년 13년 동안의 작품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회화부터 드로잉, 컷아웃(쉽게 말하면 색종이 오려 붙이기), 스테인드글라스까지 다채로웠어요. 

특이했던 점은, 작업 방식은 전부 제각각인데도 한눈에 마티스의 손길을 알아챌 수 있었다는 것. 장르를 불문하고 모든 작품이 '나야. 마티스.' 하고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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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으로 그려도, 붓으로 칠해도, 색종이를 오려도...

아. 왠지 친구가 질투 난다고 했던 이유를 모호하게나마 알 것 같습니다. 자연스럽게 마티스가 어떤 생각으로 종이를 자르고 물감을 섞었는지 호기심이 생겼지요. 그 궁금증을 따라가며, 전시장을 탐험해 봅시다!

> “내가 꿈꾸는 것은 골치 아프거나 마음을 어지럽히는 주제가 없는, 균형과 순수함, 그리고 평온함의 예술이다. 마치 육체적인 피로로부터 휴식을 주는 **안락의자** 같은 것 말이다.” 《화가 노트》,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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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에도 여전히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그 안락의자.

이렇게 알록달록하고 푹신한 안락의자를 만드는 사람은 실제 인생도 행복하고 평화로웠을 것만 같아요. 매일 10시간씩 자고, 샛노란 햇빛 아래서 과일 깎아 먹었을 것 같고. 하지만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들 전부 커다란 비하인드 스토리를 숨겨두고 있었어요. **모든 작품이 마티스의 몸이 무너진 뒤에 만들어졌다는 사실.**

만 71세에 십이지장암 수술을 받은 마티스는 합병증 때문에 복근이 영구적으로 손상되어 침대와 휠체어 생활을 하기 시작했어요. 마티스가 스스로 ‘덤을 얻은 삶(rabiot de vie)’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죽음 직전까지 다녀온 사람이었습니다. 그 신체적 불편함에 굴하지 않고 여전히 평온함을 계속해서 그리고 있었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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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몸이 불편하다면 어떻게 이걸 다 완성했을까요?

**이젤 앞에 못 서 있는데 어떻게 드로잉을 하지.**

마티스는 긴 대나무 장대 끝에 목탄(크레용)을 묶어서 벽에 붙인 종이, 심지어 천장에 붙인 종이까지 침대에 누운 채 뻗어서 그렸어요. 

**색종이 오려 붙이는 건?**

조수들이 먼저 색종이를 만들어 두면 마티스는 침대나 휠체어에 앉아 가위질만 했어요. 종이를 들고 돌려주는 것조차 조수. 오린 색종이를 붙일 때 마티스는 막대기로 "저기, 조금 위" 하고 지시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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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업은 계속된다!

그런데, 마티스의 컷아웃을 보면 솔직히 한 번쯤은 이런 마음이 듭니다.

“이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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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스도 이 반응을 예상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의 작품이 너무 손쉽게 만들어진 것처럼 보여서, 젊은 사람들이 필요한 훈련까지 생략할까 봐 걱정했다고 해요. 

> 나는 늘 내 노고를 감추려 애썼고, 내 작품이 봄날의 가벼움과 기쁨을 지녀 그 뒤의 수고를 아무도 짐작 못 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나는 두렵다. 젊은이들이 내 작품에서 겉보기의 손쉬움과 데생의 무심함만 보고, 그걸 핑계 삼아 꼭 필요한 수고들을 건너뛸까 봐. (I have always tried to hide my own efforts and wished my works to have the lightness and joyousness of a springtime which never lets anyone suspect the labors that it has cost. So I am afraid that the young, seeing in my work only the apparent facility and negligence in the drawing, will use this as an excuse for dispensing with certain efforts which I believe necessary.)

컷아웃은 노년의 화가가 심심풀이로 시작한 색종이 놀이가 아니었어요. 가위질 한 번으로 형태를 그리고 색을 채우는 일을 동시에 해내는, 새로운 방식의 그림 그리기였습니다. 마티스는 이를 ‘가위로 그리기’라고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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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마티스는 어떻게 이 방법을 생각해 낸 걸까? 가위가 어느 날 갑자기 영감처럼 등장한 것은 아니었어요. 마티스는 이미 오래전부터 색종이를 작품에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발레 무대와 의상을 디자인할 때 색종이를 오려 배치를 구상했고, 대형 벽화를 준비할 때도 색칠한 종이를 붙였다 떼며 구도를 잡았습니다. 다만 그때까지 가위와 색종이는 주인공이 아니라 밑작업을 돕는 조연이었을 뿐!

몸이 불편해진 마티스에게 가위는 더 이상 조연이 아니게 되었어요. 붓으로는 할 수 없었던 일을 가능하게 하는 다른 도구가 된 것. 혹시 모르죠. 스탠드포인터가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지금의 능력이 다음 스텝의 새로운 핵심이 될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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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가 말한 “마티스 질투나”에 답해 보자면

응, 나도 질투 나더라. 진짜로. 왜냐면 나도 마티스처럼 그런사람 되고 싶거든. 아주 오래 진짜 뚜렷하고 멋지게 뭔갈 만들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평화롭게 해 주고, 때로는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사람 되고 싶은데 마티스는 그렇게 살아서. 그게 말도 글도 설명도 아니고 그 사람이 그린 그림만 봐도 느껴져서.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을 질투한다니 사실 웃긴 일이지만, 어쩌면 다행일지도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마티스에게 질투가 나서요. 길에서 우연히 산 로또가 당첨되어서 아주 큰 부자가 된 사람이 아니라, 금은보화 잔뜩 안고 태어나서 아무것도 안 해도 물 흐르듯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진짜 자기 마음 따라서 제대로 사는 그런 삶 있잖아요. 그래서 한 생애가 음악의 선율처럼 아름다운 그런 삶이요. 기본에 충실할 줄 알면서도 마음속에는 자신만의 자유로움을 꼭 안고 있는 삶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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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고 또 배우십시오. 그러나 본연의 순수함(naïveté)을 잃지 말고 지켜내야 합니다. 그것은 마치 술꾼에게 깃든 술에 대한 갈망처럼, 혹은 연인에게 깃든 사랑처럼 당신의 내면에 숨 쉬고 있어야 합니다."《Time》 誌, 1950.6.26

> "You study, you learn, but you guard the original naïveté. It has to be within you, as desire for drink is within the drunkard or love is within the 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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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260709 전시 보고 난 직후의 메모. 최종 아티클이랑은 많이 다르지만 둘다 맘에 든다. @grand palais (노트: 스탠드포인트 레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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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S. 아티클 쓰면서 알게 된, 마티스에 관한 깨알 사실!

1. 마티스는 원래 법학을 공부하고 법률사무소 서기로 일했지만, 스무 살에 맹장염으로 누워 지내던 중 어머니가 건넨 물감 상자로 그림을 시작했고 결국 법률가의 길을 떠났습니다. 아플 때 심심하다고 아무거나 시작하면 인생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인생은 한 치 앞 모르는 법.
2. 파리 미술계에서 피카소의 부상에 밀려 불안해하던 시기에 마티스는 훌쩍 떠났어요. 모로코로요. 그런데 폭우가 겹쳐 보름을 호텔 방에서 지냈다네요. 작업을 멈추는 대신, 마티스는 방 안의 꽃병과 창밖의 풍경을 묵묵히 그리는 아주 기본적인 작업에 집중했습니다. 마침내 비가 걷히고 햇빛이 쏟아졌을 때, 마티스는 평생 보지 못했던 맑고 투명한 빛의 세상을 마주해요. 모로코의 강렬한 색감과 이국적인 양탄자 문양을 흡수하며, 대상의 형태를 똑같이 그리는 기존의 규칙을 깨부수고 독창적인 스타일을 발전시켜 파리로 돌아왔습니다. 어라라. 도망친 곳에 낙원이 없을 때도 있지만, 가끔은 있을지도!